음악으로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다
ㆍ‘i-신포니에타’·‘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등, 소외계층 아이들 모아 클래식 악기 가르쳐
아이들에게 음악은 꿈과 희망과 용기 그 자체다.
18일 근대건축이 살아 숨쉬는 인천시 중구 한켠에서 아이들의 낯선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춘 주인공들은 다름아닌 ‘나눔의 집’, ‘희망아동 그룹홈’, ‘행복한 집 그룹홈’, ‘향진원’, ‘청학동 나눔의 교실’ 등 인천에서 모인 시설 아이들. 악기를 시작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얼굴에 묻어나는 표정만큼은 유명 연주자 못지않은 진지함이 배어나온다.
같은 날 인천시 부평구 신명보육원 아이들이 맑은 하늘을 벗삼아 고사리손에 악기를 하나씩 들고 보육원 뒤에 마련된 작은 동산에 오른다. 연습내내 음정도 박자도 어색하지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연습이 끝나자 약속했다는 듯이 아이들이 작은 입을 모아 외친다. “음악이 아주 좋아요. 선생님, 한 번만 더 연습해요.”라고.
‘엘 시스테마’,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저소득 빈곤층, 길거리 아이들을 위해 시작된 음악교육이 바다 건너 멀리 인천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선 이미 빈민·소외계층 아이들이 음악가로서 꿈을 키워 성공을 거뒀고 이제는 점차 그 규모를 늘려 빈민·복지문제 해결까지 나서자 인천에서도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에서 가장 먼저 깃발을 든 곳은 한국의 대표적인 실내악단 ‘i-신포니에타’이다. 2004년 인천에서 창단한 후 꾸준히 봉사활동을 가져왔던 ‘i-신포니에타’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발견한 뒤 음악을 통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봉사활동을 계획했다.
조화현 단장을 필두로 12명의 단원들이 뜻을 모은 ‘i-신포니에타’는 3월부터 ‘잠자는 악기를 찾습니다’란 캠페인을 벌인 뒤 현재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인천지역 시설 아이들 19명을 끌어 모았다.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각자에게 맞는 악기를 나눠주고 5월부터 레슨을 시작했다.
조 단장은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부터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인천에서도 음악을 통한 기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i-신포니에타’에 이은 제2의 인천 ‘엘 시스테마’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인천연대에서 2005년 분리돼 지역 시민문화단체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그 역할을 맡았다.
현재 센터는 ‘음악으로 꿈꾸기’란 이름으로 부평 신명보육원 아이들 32명에게 악기를 가르친다. 전문 연주자를 강사로 모시고 부족한 자리는 센터 활동가와 지인들이 나서서 6월부터 플루트, 바이올린, 통기타, 피아노, 클라리넷 등 10여 가지 악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지연 신명보육원 사회복지사는 “아이들 대부분이 TV로만 봤지 직접 클래식 악기들을 만져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며 “음악을 시작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은 게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i-신포니에타’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는 큰 꿈을 그린다. 아이들로 구성된 순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말에 인천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현재 ‘i-신포네에타’가 문화재청으로부터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부평문화원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있지만 지원이 한정돼 있어 지속적인 무료강습이 불가능한 처지에 놓여 있다. 부족한 악기구입과 수리비에도 적잖은 돈이 들지만 현재 예산만으로는 큰 꿈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임승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는 “음악만큼 아이들에게 순수하게 다가가 큰 희망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라며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음악의 기적이 한국 땅 인천에서도 일어나기 위해선 주위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FESOJIV)’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베네수엘라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1975년 음악가이자 정치가인 아브레우 박사가 설립한 뒤 가난과 범죄, 가정 폭력, 마약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해 왔다. 시스템 도입 당시 11명의 청소년으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27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125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60개의 어린이 오케스트라, 수백 개의 합창단을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40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으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다수 배출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음악 혁명’으로 자리잡았다.
<글·사진 김지환기자 kjh1010@kyunghyang.com>